이 아이는 사악하다 - 최면에 걸린 일본

"이 아이는 사악하다"라는 영화를 보고 느낀점을 정리합니다.

2023-04-02

이 아이는 사악하다

오랜만에 일본 영화를 봤습니다.

그간 이런 저런 이유로 일본어 공부를 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실력의 성장을 가늠해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영화라는게 쉽게 봐지지 않더라구요. 주제나 소재가 개인적인 취향과 맞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영화 소개 프로에서 최근 일본에서 흥행한 이 아이는 사악하다라는 영화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주제나 소재를 떠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본인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최면의 이질감

최면이란 장치를 가장 인상 깊게 접한 영화는 올드보이 였습니다. 올드보이에서 최면이란 모든 스토리의 전개를 가능하게 해 주는 마법 입니다. 다시말해 관객이 최면이라는 영화적 장치에 납득하고 따라와 주지 못하면 이야기에 몰입하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독은 최면이란 이야기 전환의 충격을 무디게 하기 위해, 낙지를 통으로 먹는 기괴한 장면으로 관객을 마취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 이질감이 아이는 사악하다라는 영화에서 또 한번 느꼈습니다.

최면으로 인한 이야기 전개는 '어떻게 이런게 가능하지?' 라는 감정적 몰입을 방해하는 질문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감독 역시 최면에 걸린 사람의 눈이 돌아가는 기괴한 장면으로 논리보단 판타지의 영역으로 관객을 설득하는 듯 했습니다.

이것이 도데체 뭘까. 이 이질감이라는 것 말이죠.

최면과 일본

최근 일본은 강제징용, 위안부, 독도 등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나라의 국익을 충실히 추구해가는 일본의 위정자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정치현실과 비교해 한편으로 부럽기까지 합니다. 어찌보면 그것이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해야할 중요한 임무 중에 하나겠죠.

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어떨까요? 그들도 강제징용, 위안부, 독도가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까요?

저는 이 아이는 사악하다를 보면서 '일본 국민 역시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영화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런 내용을 가진 영화가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말이죠.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 영화의 최면이라는 장치에 쉽게 공감하고 따라 들어가기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그것이 가능했기에 이 영화가 박스 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아무리 말도 안되는 논리라 해도 불편한 진실과 고통스런 현실을 피해 기꺼이 최면의 상태로 들어가는 선택을 하는 것이죠.

좋은 아빠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은 좋은 아빠 입니다.

이렇게 보면, 좋은 아빠는 우경화된 일본의 정치인 아닐까요? 파괴된 가족을 복구하기 위해, 행복한 가족이라는 도그마를 공고히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국민 마저 최면을 거는 캐릭터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 반항하고 친구의 죽음도 알게된 현실에서 앞에서도 강력한 도그마에 무기력하게 순종하는 일본 국민의 모습은 여주인공 같습니다.

마치며

영화를 보고 나름의 해석을 현 시대의 일본의 모습과 비교해 정리해 봤습니다.

작가가 의도했던 안 했던, 저에겐 그렇게 읽힐 만큼 다가오는 이질감은 영화와 또 영화같은 현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편으론 이런 모습이 일본인들의 모습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중국도 최근에 대만 침공의 프로파간다를 담은 영화가 엄청난 흥행을 거두었습니다. 한복과 김치로 알 수 있는 그들의 극단적인 애국심을 비교하면 일본은 그래도 붙잡고 설득이라도 해 볼 수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예외일까요? JMS로 드러난 우리의 비이성적인 모습이 얼마나 오랬동안 지금까지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렸는지 생각하면 과연 인간에게 희망이 있는 것인가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비이성적인 모습에서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 그것이 가능하긴 한걸 까요? 냉철하게 사고하고 의심하고 스스로 강인한 자신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까요? 저는 자신 없습니다. 왜냐하면, 최면과 극단과 믿음에 사로잡힌 인간들도 모두 하나같이 저 보다 잘란 사람들 이였으니까요.

오히려 저는 이해와 공감속에 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최면과 극단과 믿음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배척하면 결국 나 역시 또 하나의 극단이 되어버립니다. 그런 관계속에서 타협과 절충이란 기대할 수 없겠죠.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하고 조금이라도 공감해보려하고 무엇보다 나도 최면과 극단과 믿음에 사로 잡힐 수 있다는 마음 가짐이 필요합니다. 야생에 놓여진 종족들 처럼 서로 배척하고 군림하지 않아야 합니다.

서로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찾아보는 노력끝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다음 세상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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